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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rise

2019.09.18

 

' 결국엔 거짓말이다. 달에서의 지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사랑하는 이름은 가장 진실로 거짓된 것이다.'

 

 

<Earth-rise>, William Anderson, 1968

 

 

 

 

"이건.. 어렵겠는데요"

 

 기자는 유감이라는 듯 관자놀이에 손바닥을 꾹 누르며 머리를 긁었다. 역시 그런가. 한숨인지 어절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목소리 사이에는 눈에 보일 것 만큼의 피로가 더께 쌓여 있었다. '행방'이라고 크게 적힌 기자의 노트에는 그 위로 거친 펜선의 동그라미가 여러 번,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은 그들의 노고가 타고 남은 잿더미였다.

 

"뭐, 당장 찾을 수 있더라도 이 모습으로 만나시기는 좀 그렇잖아요. 가서 샤워랑 면도 좀 하시고...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기자가 자신의 턱을 손 끝으로 두어번 두드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수첩을 닫아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면도를 한 게... 그는 가슬한 턱을 매만지며 눈을 내리깔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덤불의 색의 눈동자는 딱 그의 피로만큼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는 머릿속을 얽어놓은 가시덤불 때문에 무념과 고통사이에서 그 날 이후로 잠들지 못했다.

 

 

"꼭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주신 증거도 제 쪽에서 힘 닿는 데까지 조사해보죠. "

"그래. 부탁하겠소."

 기자는 건너 받은 사진을 앞뒤로 두어 번 팔락거려 보이고는 가볍게, 그러나 걱정스러운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그는 그대로 문을 닫고 쿵, 하고 머리를 부딪히듯 기댔다. 능력은 언제나 갑작스러웠다. 파리 한복판에 떨어진 날도, 그녀의 사무실의 문을 열게 된 것도 모두 그 자신에게는 돌연한 것이었으며 그 대가가 무엇이든지 그는 노련하게도 자신이 즐거워질 방법을 찾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사람다운 일이었다. 이 짧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비인간적인 그녀와 만나는 일에 있어서도 가장 인도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이 자신의 인생과 그녀에게 있어 충분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때때로 삶은 영악한 모습을 띠기 마련이었으며 시험의 형태는 그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가령 끝까지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전장의 폭발음이나, 분명히 어제만 해도 함께 잠들었던 그녀의 부재라거나.... 더 정확히는 답이 보이지 않았던 그의 시간선 귀환의 성공이라거나.

 

  그로부터 나흘? 아니, 일주일.. 어쩌면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그의 시선과 귀와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헤집고 의심하고 추궁하고 되물으며 사력으로 그녀를,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가 무엇이지. 글쎄, 헬리오스, 태양? 시리우스? 그마저도 맥락 없는 그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만이 대답이 아닌 경우에나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 어느도 그 은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대답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어떠한 흔적이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가히 신경질적이거나 편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경계를 늦추는 법이 없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에 가닿을 때 고개를 모로 피하지 않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그렇게 잡은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체온이 얽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로를 나누었던가. 그는 자신의 왼손을 펴 그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그대로 어긋잡아보았다. 딱 하나, 자신의 몸 쪽으로 돌린 손목시계는 그 어느 나라와도 맞지 않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곗줄에 걸리는 두근거림이 도저히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그녀가 그에게 남긴 것-흘린 것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가듯 넘겨준-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달의 지면, 우주, 반쯤 보이는 지구. 그 사진의 이름을 들은 그가 감탄을 숨기지 못하자 그녀는 공연히 그에게 그 사진을 선물했다. 주니까 감사히 받겠지만, 왜? 그녀는 언젠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있을 것 같아서'라니. 명백한 그녀답지 않은 발언을 주의했어야 했나. 그녀를 찾기 시작해야 했던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또 얼마나 낮과 밤이 돌았을까. 가장 쉽게 눈에 걸리는 손목의 시계는 해가 떠있는지 져 있는지 모를 여섯 시를 가리켰다. 지금 쯤 일어날 시간인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려는 시간인가... 어쩌면 집으로 돌아올 명분이 사라졌으니 아직 일을 하고 있으려나. 그녀의 행동과 시간은 어긋나는 법이 드물었기에 어떤 시간대든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으나 언제나 그녀의 머릿속은, 특히나 그 마음 깊은 곳은 쉬이 짐작하기 힘들었다. 혹시, 혹여라도 그녀가 그 자신처럼, 아니 그 반의 반 만이라도 나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의 생각을 도려내는 듯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설마,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수화기를 낚아채고는 송신기 너머에서 들리는 기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 기자가 전해준 것은 그 사진의 이름, 어스라이즈는 거짓말이라는 간단한 사실이었다. 달은 자전과 공전 주기가 같아 늘 지구에게 같은 면만 보여주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지구가 돋아오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고.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전달은....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보려는 것은 감히 어리석은 일인가. 그녀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많고 많은 말들은 지구에서 보는 달이었고 그의 시간은 그저 지구에서 달만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했던 일인가. 

 

 결국엔 거짓말이다. 달에서의 지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사랑했던 이름은 가장 진실로 거짓된 것이다.

 

 수화기가 올려진 선반 앞에서 그는 숨을 죽였다. 무너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가 흘려보내는 것이 탄식이든 눈물이든,

어쨌든 그것만은 가장 진실된 것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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